행복한 댄서 찰리(원윤경)강사가 만난 사람들 / 박정훈 편

▲ 행복한 댄서 찰리(원윤경) 강사.
[검경일보 특별기고/ 행복한 댄서 찰리(원윤경) 강사] 충무로 인쇄골목. 겨우 한사람 빠져 나올 만큼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모퉁이를 돌면 정훈이 운영하는 작고 초라한 사무실이 있다.

이른 새벽, 생산을 위한 기계가 끼익 끽, 쇳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정훈은 분주한 손놀림으로 원고 수정과 납부 기한을 재확인 하며, 따르릉 따르릉 따릉, 하루를 재촉하는 전화를 기계소리와 맞물려 고래고래 소리 높여 받는다.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고 나면, 점심 식사는 대충 자장면으로 떼 우고 잠시 밖으로 나와 골목길 시멘트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구수하게 담배 한대를 깊이 빨아들인다. 이 시간이 정훈에게는 참 편안한 휴식시간이다. 고개를 들어 흩어지는 연기의 끝을 따라 하늘을 본다. 하늘의 구름은 좁은 골목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언 듯, 나지막이 떠 있던 구름은 호주에 살고 있는 외동딸과 아내의 얼굴이 되어 옅은 미소를 남기곤 사라졌다.

지방에서 미대를 나온 정훈은 졸업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와 강남에서는 제법 크다는 출판사 직원으로 취직한다. 워낙 성실하고 꼼꼼한 성격 탓에 신임도 많이 얻었고 근무한지 15년이 지난 뒤, 디자인 실장 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충무로 골목으로 와 인쇄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어렵게 작은 사무실을 구하고 독립은 했지만, 생각보다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새로 생긴 작은 출판사에 선뜻 일을 맡기는 거래처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훤칠한 키에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사교성이 좋아 어디든 시간 나는 대로 봉사하며 다녔다. 이러한 덕이었을까?

1995년 6월 기초 의회의 의원과 단체장, 광역시·시·도 의회 의원과 단체장 선거가 실시되어 본격적인 지방 자치 시대를 맞게 된 시점부터는, 출마 하려는 지인들로부터 자서전과 의정 보고서 혹은 홍보물을 하나 둘씩 의뢰 받게 되는 반가운 기회가 찾아왔다.

정훈은 고객들에게 친절 했으며 성심성의껏 책을 펴 내 주었다. 그의 정직함과 정교함은, 또 다른 고객의 소개로 이어지는 칭찬이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직원도 늘고 사무실도 넓히게 되었다. 그는 호주로 떠난 딸아이와 아내에게 자랑스러운 아빠, 든든한 남편으로 인정받는 것이 참으로 행복 했다.

건축을 전공한 딸은 공부를 마치고 호주에 있는 건설회사에 취업을 했는데 딸아이를 잘 본 회사의 사장이 자기 친구 아들을 소개시켜 주어 딸은 결혼하였다. 정훈의 아내는 딸이 중학교 1학년 때 호주로 함께 건너가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

먼지와 기계 돌아가는 소리 속에서 아내와 딸아이의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일만하던 정훈은 아내와 딸이 안정된 삶을 살게 될 무렵, 그의 심장에 병이 생겼다. 병원에서는 일을 줄이고 쉬라고 한다. 일만 해 오던 정훈은 어떤 방법으로 쉬어야 할지 막연했다.

번 아웃 정훈.
성공을 위해 정신과 체력을 다 태워 소모한 후, 극도의 피로로 탈진했을 때를 번 아웃 이라고 말하는데, 번 아웃이 오면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비슷한 말로는 성공 후 우울증을 알렉산더의 눈물 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스물아홉에 세상을 정복하고 난 후, 이젠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구나.” 라며 울었다고 하는 설이 알렉산더의 눈물이다.
알렉산더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시 그를 짚어본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인도 그리스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대왕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왕자 시절 여러 가지 공부를 지도 받았다.
알렉산더 하면,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와의 웃지 못 할 일화가 있다.

왕자 알렉산더는 절세의 미인이며 고급 접대부 필리스에 빠져 공부를 게을리 했다. 보다 못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따끔하게 한 마디 했다.
“지나치게 여색을 밝히면 학문과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니 정신 차려야 합니다.”
장난기가 발동한 알렉산더 왕자는 오히려 필리스를 시켜 스승을 유혹 하도록 했다. 여색을 멀리 하라고 알렉산더에게 경고했던 그는 오히려 욕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빠져 버렸다.
급기야 “그는 벌거벗은 필리스를 등에 태우고 기어 다니는 등 성적 노예로 변신하게 되었다.“ 는 고전 중 알렉산더와 얽힌 재미난 이야기이다.

충무로 대한극장 주변 허름한 대포 집에서 정훈은 찰리와 마주 앉아 막걸리를 한잔 하고 있다.
정훈과는 댄스스포츠 대회를 할 때, 포스터를 의뢰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관계로 만난 지인이다.
술과 음악을 즐기고 사람을 좋아하는 정훈에게 찰리는 편안한 대상 이었나보다 시간이 한가해 지자, 제일 먼저 전화를 걸어온 걸 보면?

아내와 딸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방전 시켜버린 정훈은 무엇인가로부터 에너지를 충전 시켜야 했다. 그는 충전을 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체험을 해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 생각했다.

감동적인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작은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훈은 쉽고 빠른 방법으로 찰리에게 춤을 한번 배워보고 싶다고 상담을 의뢰 해 왔다. 나이도 비슷한데다 안쓰럽고 걱정도 되기에 승낙을 하고 춤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늘 혼자였던 정훈은 춤을 배우면서 외로움을 이기기 시작했다. 춤은 누군가와 함께 추어야 하니까 사람들은 늘 주변에 있었고 그들은 정훈이 외로움을 잘 헤쳐 나오도록 힘이 되어 주었다. 열심히 땀 흘리며 춤을 추면서부터는 잠도 잘 자게 되었고 피곤이 쌓이지 않아 일어날 때면 몸과 정신이 개운하여 기분이 참 좋았다.

건강도 찾았다. 지금도 매일 춤을 추러 다니는 정훈에게 춤은 삶이 되어갔고, 에너지 충전소가 되었다. 그는 기러기 아빠로서 그리고 외로운 남편으로 살고 있었지만, 이제는 하루하루의 혼자 있는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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