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댄서 찰리(원윤경)강사가 만난 사람들 / 권혜인 편

▲ 행복한 댄서 찰리(원윤경) 강사.
[검경일보 특별기고/ 행복한 댄서 찰리(원윤경) 강사] 혜인은 남편과 일요일이면 함께 성당에 간다.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말없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각방을 쓴 지도 벌써 10여년, 마음의 문을 닫은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가정은 조용히 서로 유지하고 있다.
혜인은 딸아이 둘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고 남편은 회사 일에 집중한다.
매일 수없이 이혼을 생각하곤 하지만,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경제적으로도 독립이 어려워 마음을 누르고 살아가고 있다.

"학원비하고 생활비 보내줘요" 문자를 보낸다.
한참 후 답장이 온다. "내일..."

집안에서 대화는 아이들을 통해서 주고, 받거나 문자로 한다.
가급적이면 방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을 건드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혜인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때라곤 일요일 성당 갈 때와 집안에 일이 생겨 같이 가야 되는 경우와 부부동반 회사 행사가 생길 때뿐이다.
그럴 때에는 함께 참석해서 그가 하는 말에 둘 사이엔 아무 일이 없는 듯 가끔 웃어주는 일만 하면 된다.
가끔이지만 회사 부부 모임을 갈 때에 부부 사이로 인하여 혹시나 진급에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그 사람의 눈빛을 볼 때면 참으로 불쌍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남편, 또는 아내라는 말은 책에 쓰여 진 단어이다. 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주변 친구들에게 혜인이 사는 이야기를 하면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별스럽게 사는 사람 있는 줄 알아? 없어.
그냥 그렇게 참고 살다보면 다 살아지는 법. 신경 쓰지 말고 애들이나 잘 키우면서 각자 재미있게 살라고들 한다.
언제나 늘 위로가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잔뜩 듣기는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부부행복, 민간요법 보다는 혜인 스스로 답답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 자체만으로 어느 정도는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어 그나마 위로의 말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기도 한다.

현관문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쓰~윽 하고 문이 열리면
싸늘한 가을 찬 공기와 옅은 술 냄새가 현관문을 비집고 들어온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아이들의 인사에 희미하게 대답을 하며 거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탁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그 소리는 같은 공간을 가르는 음이 된다. 이제는 섭섭함은 물론, 눈물도 나지 않는다.
혜인은 남편을 포기했다. 그렇게 생각한다.
아이들을 위해서 엄마라는 자리만 지킬 뿐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대기업을 다니던 혜인은 비서실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남편은 같은 회사 총무과에 있어서 일로써 둘은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당시 남편은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남자였다.
혜인은 정장이 잘 어울리는 그가 좋았고 말수도 적고 믿음직한 모습이 든든하기 까지 했다.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 입덧이 심해서 시시때때 먹고 싶은 것을 문자로 보냈다.
퇴근할 때 족발 좀 부탁해요.~
오늘은 순대 좀 사오면 좋겠는데요?
과일 파는데 있으면 사과 좀 사다줘요.~
그런데 남편은 늘 자정이 넘어 빈손으로 들어왔다.
야속하기도 했지만 회사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모든 게 이해되어져야 했고 더 이상의 말은 잔소리라는 말에 묻혀 버렸다.

매일 술에 취해 자정을 넘어 들어오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짜증을 부리면 회사를 안다니면 그런 일 없을 테니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어기 장을 부린다.
아니면 당신이 회사 다니면서 이만큼 벌어오던가 나보고 어쩌라 구? 하면서 휙 나가 버린다.
나가지 말라고 소리 지르며 흐느껴 울기도 해 보았지만 혜인의 말을 무시한 채 나가버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쌓여갔다.

아이 키우는데 매달려 고립되어 있는 혜인과는 달리 남편은 직장에서 계속 승진을 했다. 그럴수록 집에 있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주중에는 언제나 새벽에 들어오고 주말이면 낚시나 골프 치러 나가고 어쩌다 약속이 취소되는 날이면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잠만 잤다.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인 줄 연애할 때에는 꿈에도 몰랐다.
돈만 벌어다 주는 남편. 집은 잠만 자는 장소로 만들어 놓고, 자신이 편하게 회사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우미 아줌마 정도로 혜인을 취급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부인 자랑을 한다.
혜인은 그럴 때마다 이중적인 모습을 보면서 역겨움을 참느라 고생을 해야 했다.
남편은 자신의 이미지가 보편적인 것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게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질까 늘 전전긍긍 하며 살고 있다.

손재주가 좋은 혜인은 10년 동안 꾸준히 비즈 공예와 비누 공예 그리고 리본공예를
배워 왔다. 최근에는 LED 플라워 공예를 다 마치고 작은 공방을 차렸다.
남편이 출근하면 공방에 나가 수업을 지도하고 작품도 만들어 팔기도 하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구청의 도움을 받아 구청 행사에 전시회도 열면서 혜인만의 시간을 가지며 살았다.
결혼 20년 되던 작년 2015년. 혜인은 이혼을 요구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남편은 이혼만큼은 안 된다고 했다.

혜인은 그럼, 앞으로 한 집에선 살되, 각자 건강 챙기며, 어떻게 살든지 서로 관여하지 말고, 살기로 서로 합의를 했다.
남편과 합의한 후 날아갈 것 같은 마음으로 제일 먼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춤을 배우기로 하고 혜인의 친구의 소개로 찰리를 만나 공방에서 춤을 배운다.

마침 찰리를 소개한 여자 친구가 남자 춤을 배운 친구라서 둘이 연습을 하기로 하고 작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개인레슨을 받고 있다.
혜인의 친구는 여자 친구들끼리 소주도 한잔하고 노래방도 자주 간다.
노래방에 가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데 서로 여자이다 보니 남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춤을 못 추는 게 안타까워 본인이 찰리에게 남자 춤을 배워 친구들을 잡아주게 되었다가 계속 남자 춤만 추는 친구다.
혜인처럼 춤을 추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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