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환 교수.

시의 본질이 변한 적은 없다.
그러나 주어진 시대마다 표현의 방법을 각기 달리 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각 시대마다 인생관, 세계관이 달랐듯이 시에 대한 요구도 시대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사랑을 예시 해 보자.
우리 조선 시대의 사랑은 사랑의 감정을 안으로 감추어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다.
그래서 사랑하는 임을 만나도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소를 흘리는 것으로 입가에 사랑을 표현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랑 표현은 어떠한가. 만나자 마자 주변에 누가 있건 없건 껴안고 뽀뽀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는 사랑의 본질이 변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름을 말해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도 시대를 거듭 하면서 시 자체가 변한 것이 아니라 시법에 따라 표현하는 방법을 달리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시가 어떤 경로를 어떻게 각기 달리 표현되어 왔는가 하는 점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오늘의 시가 이렇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필성을 깨닫게 되고, 또 이 깨달음을 통해 오늘의 시 작법에 신뢰를 갖게 될 것이다.

간략히 시사를 정리해 보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시사를 정리 한다는 것은 엄청난 작업이기 때문에 그 방대함을 수용한다는 것은 본 장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 시대마다 무엇을 주체로 무엇을 어떻게 해석하고 진술 하고자 했는가 하는 발췌, 진열함으로써 시 흐름의 역사 적 경로를 밝히는 것으로 대신 하고자 한다.

시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시는 한마디로 미, 질서, 지혜의 미학 이었다.
이 시대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은 인간의 운명을 신탁에 의해 결정하는 운명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산과 같은 밝은 지혜를 갈망하고 현세적 삶을 중시하는 정치와 연애와 술을 즐겨 주제화 했다.
또 미를 사랑하고 질서를 존중하는 삶을 중시했다. 그래서 그리스 문학은 미. 질서. 지혜를 발상 근저로 했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들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으로 인간의 힘이나 지혜로써는 도저히 극복 할 수 없는 또 다른 힘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것이 곧 신의 존재였다.
그 신은 제우스로 대표되는 다산주의로서 신은 제각기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운명에의 의탁은 필연적으로 현세적 삶을 즐기려는 정치, 연애, 술과 같은 쾌락 원리로 작용했다.
이 시대를 표현한 시도 예외 없이 이런 삶들을 주체화함으로써 이성의 통제보다는 열정적 표출을 필연 화할 수밖에 없었다. ㅡ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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