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환 교수.

흔히 현대시를 메타언어라고 규정하는데, 메타란 두 의미론적 해석을 요구한다.
하나는 언어의 초월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뒤에 감추어진 비의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초월적 기능은 의미의 확장이자 의미의 고정화를 거부하는 일종의 암시나 상징적 기능에 의탁한다. 그리고 비의는 드러나지 않는 것을 포착 해 내는 일종의 새로운 의미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속성을 우리는 병치적 메타라고 하고, 후자적 속성을 치환적 메타로 규정한다.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이질성 속의 동질성을 찾아 결합한다. 동질성 속의 이질성으로 이동한다든지 하는 일종의 변증법적 결합이다.
이러한 결합은 의미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대신 의미의 초월이나 의미의 암시에 의존 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의미의 물화나 의미의 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메타피지컬 포위트리는 시적 변증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관념이나 사상을 중시하면서도 표현은 메타화에 의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이상 시는 리얼리즘의 현상학적 권태로움을 초월성이나 신비로 대체하고 여기에서 고도화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동시에 상상력은 기발한 착상의 컨시트를 창출해 낼 수 있게 한다.

컨시트는 상대성을 초월하여 초자연적인 대자적 시각을 극복함으로써 형이상적 속성을 지니게 된다. 또 이러한 상상력은 기존의 물화를 빚어 형상화한 이미지의 단조로움을 극복, 아이러니, 풍자, 패러독스, 도착적 표현 등으로 종합적 효과를 획득하는 기법상의 진보도 가져다주었다. 또한 현대시를 아이러니 생각하는 엘리엇의 견해를 진일보시킨 풍자에까지 이르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형이상 시는 단순한 기법상의 문제가 아니고 현대의 복잡다기한 분열상, 정치와 과학의 분화, 복잡한 문화 현상 등을 반영하기 위한 복합적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개관에서 볼 수 있듯이 시는 그 본질의 변화가 아닌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따라 그 표현 방법을 달리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살면서 19세기적 낭만주의 시를 쓰고자 한다거나 이미지즘을 신봉하는 외고집을 부리고자 한다는 것은 참으로 넌 센스다.

우리에게 당면으로 주어진 시학은 시의 메타화이거나 컨시트와 아이러니, 풍자와 같은 형이상적 시에의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오늘에 살고 있는 이상 오늘의 시가 요구하는 시법에 충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각 있는 독자라면 이러한 당면을 외면 할 수 없을 것이고 현대시에 동참할 것으로 믿는다.
이상의 여러 조건들은 시를 쓰고자 하는 이들이 시를 쓰기 전에 갖추거나 터득해야 할 기초적 정석이란 점을 강조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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