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병태 진도예총 회장.

3년 전 4월 16일. 진도는 봄이 와있었어도 봄이 아니었습니다.

느닷없이 밀어닥친 해양 사고라는 알림에 진도 사람들은 급히 팽목항으로 달려갔습니다. 찬바다에서 구조되어 오는 생환자들을 맞이하여 옮기고 있다는 소식에 우리는 모두가 자기 일을 팽개치고 팽목항으로 이동했습니다.

죄없이 죄지은 심정으로 팽목항 봉사나선 진도사람들

식당을 하는 분들은 장사를 접고 가게에 있는 음식물을 실어 날라 따뜻한 밥과 국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아무 질서가 없는 곳에서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있는 사람들이 진도사람들이었습니다.

현장의 뒤에는 언제나 진도사람들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어려운 일에는 국과 밥을 나누는 따뜻한 풍습이 남아있는 고장입니다.

죄없이 죄지은 사람들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견뎌왔습니다. 구호물품이 모여들어 창고에 정리하고 광장에 노적하며 땀을 흘렸습니다.

다른 곳에서 오신 봉사활동자들과 사고 수습을 위하여 오신 많은 분들의 뒷수발도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잘 곳이 부족해서 마을 회관까지 비웠으며 오죽하면 우리 집에서도 몇 분의 봉사자들을 재웠습니다.

밤추위에 떠는 봉사자들을 보다 못해 집에 가서 두꺼운 옷을 있는대로 꺼내다가 입히기도 했습니다. 진도의 쓰레기 소각장에서는 두 배로 불어난 쓰레기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생업을 포기하고 바다에서 실종자들의 유류품들을 찾거나 유실된 시신을 찾아 종일 바다를 헤매다가 돌아오면 오염되어 있는 바닷가 바위를 닦으러 나서는 섬 지역의 주민들.

시간이 흐르고 유가족들에게 더 울 수 있는 눈물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진도실내체육관이 비워지고 사람들의 관심도 멀어져갔습니다.

목포신항으로 시선이 갔고 진도는 퀭합니다

간절하게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랐던 유족들은 싸늘한 주검을 한구씩 가슴에 얹고 떠나갔습니다. 주검을 기다려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이런 기막힌 소원이 세상에 또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그들을 끝까지 보듬은 것은 진도 사람들이었습니다.

팽목항이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리라는 것도 꿈꾸어보지 못한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월호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한다고 공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진도를 향해 던져진 진도읍~팽목항 4차선 확포장, 해양안전관 건립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어민들의 직접 피해는 물론 서망항의 진도군 수협의 위판고는 반토막이 났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제 병풍도 앞 바다에서 세월호가 처참한 모습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목포 신항으로 떠나갔습니다.

‘예향의 고장’ 명성 되찾을 수 있었으면

이것을 바라보던 진도사람들의 감정은 참으로 처연합니다. 서운함과 가슴에 응어리진 분노가 함께 합니다. 목포 신항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가족의 품에 안길 것을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상처를 치유하면서 생활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또한 다시는 이런 후진적인 사고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사고를 원만히 수습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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