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환 교수.

현대시와 이미지

4. 절대 심상

이렇게 써 놓고 보면 불어오지 않는 바람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다.
1연에서 시골 고부란 길을 찾지 못해 길을 잃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고,
2연에서는 무성한 잎으로 도열해 선 칼날 같은 억새풀 숲을 빠져나오다 목이 잘려버렸기 때문에 올 수 없는 것으로,
3연에서는 살아남은 바람마저 숲 속으로 도망쳐 버렸기 때문에 불어오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고,
4연에서는 걸친 것 없는 알몸을 드러내기 부끄러워 몸을 숨긴 것을 대 낮이 너무 밝기 때문으로 해석 하는가 하면,
종연에서는 바람의 꼬리를 뻐꾸기가 물고 늘어지면서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바람이 올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하여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이유를 여러 경로로 설정하고 있다.

아마추어 솜씨치고는 제법 근사하고 퍽 풍풍한 상상력을 동원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기실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것은 자연 현상으로서 여름에는 바람의 기류가 형성되지 않고 또 형성된다 해도 빈약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평범한 사실을 여러 이유나 원인을 제시한 상상력으로 동원, 제법 원인이나 이유의 의미를 성립 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때 성립된 이유나 원인이 시실을 근거로 한 실증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전부의미가 비 사실 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유희적이다.
그것은 바람이 관념이나 시실, 논리로 해석하고자 한 의미로부터 일탈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미로부터 도피이거나 의미의 배제란 뜻이다.

부득이 의미론적 해석을 버렸을 때 언어는 회화한 사물 유희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바람의 의미나 바람의 해석은 관념이나 논리에서 해방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바람 자체를 획득하는 것이다. ㅡ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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