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추석 명절을 보름여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더구나 이번 추석명절은 길게 열흘이상이다. 근로자들에게는 천금 같은 휴무이다 보니 예전 짧은 기간에 비해 여러모로 달라질 풍경들이 새삼 기대된다.

설날도 그렇지만 추석은 유독 조상들과 연결된다. 우선은 한 해의 추수 앞에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르기도 하고 그 끝에 있는 풍요가 조금 다른 소회를 주지 않나 싶다. 아마 한해의 농사를 거둔 터라 마음의 여유가 느껴져 새삼 조상님의 음덕을 기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긴 명절연휴는 그간 시간상의 이유로 미뤄놨던 해외여행하기에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에 따라 조상님을 챙기는 방법도 글로벌화 된 것일까. 간단한 제수 준비, 그것도 필요한 만큼 전문 업체에서 구입하여 여행지 제사를 지내는 모습은 예사다. 이에 조상님들도 덩달아 여행 왔다고 즐거워하실까. 아니면 긴 여정에 기진맥진하여 입맛이 없으실까. 종갓집 제사 횟수에 따라 맏며느리 허리가 각도를 달리했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 젊은 며느리들은 늘어진 팔자다. 예전 우리 어머니시대 며느리들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억울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고 난 시절 탓인 걸 누굴 원망하겠는가.

일반적인 정서의 한국남자들에게 이 때 쯤의 고민은 아마 벌초일 것이다. 시간과 거리, 일의 핑계로 방치한 조상님들의 묘엔 풀만 무성하다. 하지만 때때로 뒤가 당기는 뿌리의 끈끈한 손짓을 한국 남자 누군들 무시할 수 있을까. 폐허처럼 삭막한 곳에 찾아보는 이 없이 누워계신 조상님의 쓸쓸함은 둘째치고라도 묘가 어디 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니 더 면목 없는 일이다.

2010년 기준으로 자식들이 한 번도 찾지 않아 무연고로 지정된 묘가 300만기에 달한다고 한다. 조상과 후손들의 아프고 슬픈 곡절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보니 화장을 해서 납골당에 안치하는 장례문화가 날로 성행하고 있다. 최선의 자구책으로 선택했지만 그러다보니 한 편으론 납골당 자리마저 부족한 실정이 되고 또 다른 대책이 시급한 상황까지 된 것 같다. 그래서 또 수목장으로까지 변화하고 있다. 부모님들도 자식들 짐이 될까봐 화장을 유언한다고 하지만 한 편에선 매장이 주는 의미는 역시 남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 더 많다고 한다.

포크레인 중장비 사업을 하는 지인 중엔 봄철이 되면 조상님 묘를 이장하는 사람들로 인해 본업이 헷갈릴 정도라고 한다. 이것만 봐도 조상과 그 묘를 소중히 간수 하며 정성을 기울이고 음덕을 기리는 일이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 심지에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전히 명절 즈음이면 조상을 찾는 차량으로 도로는 정체의 절정이다. 공원묘지가 있는 지역의 교통대란은 더 심각하다. 이런 제반 여건으로 인해 어쩔 수없이 선택하는 화장. 하지만 아직도 매장형 묘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이는 장례문화임은 사실이다. 때에 맞춰 묘를 찾아 풀을 관리하고 조상님을 기리면 자자손손 복록을 누린다는 믿음도 여전히 자리한다. 부모의 묘를 관리하다보면 자식입장으로 어딘가 기댈 곳이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삶에 많은 위안이 된다고도 한다.

친정아버지의 선산 관리는 누가 봐도 존경스러웠다. 명절이 아니어도 수시로 둘러보고 복구를 하고 보수를 하셨다. 아마 조상의 무덤을 돌보고 가꾸는 것이 자식들의 안녕을 위한 당신의 가장 크고 의미 있는 기원의 방식이라고 믿는 듯했다. 그런 친정 부모님이 자식들 대부분이 살고 있는 서울로 역귀성하신지 꽤 여러 해가 됐다. 차례를 지내고 조상님 묘에 성묘를 원칙으로 하고 계시는 아버지를 설득하는 데만 3년 이상 걸린 일이었다. 어찌해서 역귀성은 허락했고 그런대로 지금까지 별 잡음 없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남동생 두 명은 명절 전후 날 잡아 반드시 시골로 내려가 조상님 묘를 찾는 조건을 지키고 있다. 조상의 깊은 뿌리 없는 후손은 있을 수 없으며 조상의 음덕에 후손의 안녕과 복락이 있다는 믿음은 우리만의 문화이며 정서다. 정성을 기울여 나쁠 것이 없는 단순한 이유라고 하더라도 꼭 명절이 아니어도 내 뿌리의 소중함은 언제나 잃지 않고 돌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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