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그 나라로 들어가는 문은 사뭇 견고하며 묵직하다.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수시로 경계의 눈빛을 쏘고 가끔은 기득권을 내 보이며 며느리를 이방인 취급한다. 고추 당초보다 매운 게 시집살이라고 했던가. 오죽하면 ‘시’ 자라면 시금치도 먹기 싫다고까지 하는 웃픈 ‘시 월드’에 관련된 스토리와 언어들. 언제 어느 자리에서나 남자들에게 군대 이야기가 무궁무진 하듯이 여자들에게는 이 나라에 대한 것보다 더 흥미진진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 귀한 남의 자식으로 살다가 제2의 인생으로 결혼을 선택한 여자에게 그 나라의 입성은 사뭇 까다롭고 낯설기만 하다. 어쩌면 여자들에게 ‘시 월드’는 언제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들이 사는 곳 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이 모인 자리면 해도 해도 끝없는 시댁 이야기들. 믿기지 않는 사례들이 마치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 같기도 하다. 십중팔구 부엌데기에 천덕꾸러기. 이에 여자 스스로도 근거 없는 태생의 약점을 숙명처럼 껴안은 채, 눈물 콧물 훔치기가 다반사였다 주례사에서 들었던 결혼의 의미는 함무라비 법전처럼 보관돼 있을 뿐 ‘시 월드’의 법칙은 언제나 견고하고 수시로 개헌됐다. 또한 여전히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의식도 문제였다. 시댁 사람들과 한 번이라도 덜 마주치려는 여자들의 고군분투는 눈물겨웠다. 친정 엄마 같은 시어머니, 딸 같은 며느리는 언제나 고부간의 로망일 뿐이다.

명절 증후군, 명절 뒤 이혼 급증, 자살률 증가 등 명절 후유증은 많기도 하다. 가장 즐겁고 따뜻해야 할 명절은 언제부턴가 남녀 불문, 스트레스 유발에 외로움의 극단 현상까지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됐다. 명절을 앞둔 설렘은 세대 간의 극명한 기억의 차이만 남긴 채 아련한 유산이 됐을 뿐이다.

그런 ‘시댁 나라’에 리 모델링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많은 여인들의 눈물과 한이 토양이 되고 거기에 남편들의 자성이 골조가 되고 많은 인문학자들의 읍소가 마루에 깔리기라도 했을까. 아니, 여자이고 몸소 겪었으면서도 자리가 만드는 오묘한 마법 탓인지 며느리 시집살이 시키기를 대물림하던 시어머니들의 항복이 가장 유효했을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여자들만 바쁜 부엌 입구에서 멀뚱하게 서 있는 아들의 등을 때린 어머니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고 처음엔 웃었다. 충격은 받았지만 한 편 신선했다. 변하긴 변했구나 싶어서다. 예부터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은 조잔함의 극치였고 심지어 ‘뭐 떨어진다.’고까지 하면서 얼씬도 못하게 하던 시절에 비하면 천지개벽할 일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명절 풍속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명절 연휴는 해외여행하기에 절호의 기회가 되고 명절 음식 업체는 성황이라고 한다. 이제 조상님은 자손들의 운신 반경에 따라 비행기 타고 다니며 식사대접을 받게 됐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또한 고향길이 막힌다는 이유로 부모님들의 역 귀성이 부쩍 늘어나고,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손주 보기에 지친 부모들도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자녀들에게 이른 귀가를 종용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시대가 변하면서 여자들에게도 학력이 주어지고 사회적 입지가 생긴 것이 지금의 변화가 있게 된 원인이 됐을 것이다. 굳이 페미니즘이라는 거창한 주의가 아니라도 그동안 여자들이 음으로 양으로 부당함에 항거하며 개혁을 부르짖은 결과가 아니겠는가.

명절은 여자 본인은 물론, 남자에게도 다분히 위기의 날이었다. 살얼음 걷듯 하며 명절을 치르다 보면 피차 서로 피곤함만 남고 갈등만 생겼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명절 풍속도가 달라지고 사람들의 인식도 변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시댁 문화가 형성되고 고부관계가 새롭게 정립된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고질화 된 여자들에 대한 불이익과 푸대접이 요즘 젊은이들의 비혼을 부추기기도 했을 터, 하지만 이제‘시 월드’는 재건축 중이다. 완전히 허물어 신축하지는 못했지만 오래되고 낡은 자재부터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뜯어내며 부수는 중이다. 미혼여성들이여,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과감하게 그 나라에 들어서 보라. 그리하여 그 안에서 또 다른 인생의 청사진을 펼쳐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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