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미의 기준은 언제나 다수가 행하고 좇는 것이 기준이 되고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닐까싶다. 아니 다수의 사람들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트렌드에 맞는 미의 기준에 따라가고 맞추느라 급급한 형상이다. 그러고 보면 미인도 그때그때 유행하는 하나의 상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관념적이나마 미인이라 일컫는 모나리자는 눈썹도 없고 통통한 모습이다. 조선시대 미인의 기준도 생각보다 평범했다. 키가 작아야 하며 팔과 엉덩이는 통통해야 하며 얼굴은 동글해야 한다. 쌍꺼풀 없는 눈과 높지 않은 코에 옅은 눈썹이었으니 요즘의 미인과는 완전 상반 된 모습이다. 이쯤이면 내 모습도 언젠가는 시대를 아우르는 미의 기준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져봄직 하다.

요즘 급작스럽게, 여성들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추구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밀랍처럼 하나같이 매끈한 몸매에 인형같이 생긴 얼굴을 미인이라 칭하던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자연적인 모습이 미의 기준이 돼야 한다면서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움직임이다.

얼마 전까지도 타고난 본래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사람들은 시대를 역류하고 자신을 관리하지 못한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살찐 것이 죄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도나도 살과의 전쟁을 했다. 성형외과는 본래의 모습을 뜯어내고 시대가 원하는 이목구비로 만들려는 사람들로 남녀 구분 없이 북적거렸다. 여성들은 여기저기 불뚝거리는 살을 숨기고 졸라매던 코르셋을 벗어 던지고 셀룰라이트 가득한 팔뚝과 배를 드러내며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고 있다. 얼굴에 난 점이나 주근깨를 감추기보다는 당당하게 드러내며 자연 그대로의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내 보이고 있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 새삼 기준이 되고 있으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바람직한 일이거니 싶다.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자기 몸을 사랑하자’라는 뜻이다. 즉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자라는 말이다. 패션계에서 먼저 그런 자연스러운 얼굴과 체형을 가진 모델들을 내세워 시류에 합승하고 있다. 뚱뚱한 모델이 당당하게 무대 위에서 워킹을 하고 얼굴에 하얀 백반이 낀 모델도 거리낌 없이 대중 앞에 나오고 있다. 분명하고 혁신적인 변화다. 바디 포지티브는 원래 플러스 사이즈의 여성들이 자기보호 차원에서 부르짖은 말이었지만 더 넓은 범위로는 나의 신체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이며 더 나아가서는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이나 평등주의를 지향하자는 말로 확장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삐쩍 마른 몸과 찰흙으로 빚은 듯한 고운 피부는 이 시대의 트렌드였다. 그러다보니 남의 눈을 의식하고 거기에 맞추느라 내 안에 있는 가치와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바디 포지티브는 반가운 자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모두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획일적일지라도 여전히 예쁜 외모를 선호하고 여전히 비만이나 주름살이 게으름이며 자신에 대한 방조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다.

부정적인 신체의 이미지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우울증이나 불안감을 조성하기 쉬운 일이리라. 다분히 비현실적인 기준을 따라가고 거기에 무작정 목표를 세우고 사회적 시선에 끌려가는 일은 결국 한 사람의 개성을 뺏는 일이나 다름없다. 타인의 잣대로 내 아름다움을 정의하지 않는 것, 나답게 사는 첫걸음이 분명하다. 외모는 물론이고 내면 또한 내가 가진 나만의 아름다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을 찾아내고 그것에 당당해지는 일이야말로 내 삶의 질을 높이고 내 정체성을 찾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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