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달라졌다'를 주제로 체험수기 공모전 대상작

▲ 파주 임진각

[검경일보/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 전 정부 탄핵 결과 여부가 나오기 전, 작년 겨울에 나는 여름만이 가득 찬 나라로 해외 인턴을 떠났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위를 계속 나가긴 했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에 내가 내 나라에 없음이.

누가 들으면 어디 나라에 한자리쯤 차지하고 있는 사람인가 하겠다 만은. 이제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20대 젊은이로서 긍정적인 결과를 보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결과를 뒤로 한 채 아쉬운 마음으로 해외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정치에 관심이 많은 미국인 친구가 나에게 몇 번 우리나라 대통령에 대해 묻곤 했다. ‘그 대통령은 무슨 잘못을 했냐.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평화롭게 시위를 했냐.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냐.’ 이런저런 질문을 할 때마다 설명해주고 싶은 큰 마음과 달리 내 짧은 영어는 핸드폰 영어사전에 의지하다 결국 영어로 번역된 신문을 보여주곤 그런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내 마음을 대변할 수 없어 항상 마음이 답답했다.

그런 내 마음이 비행기를 타고 멀리 전해졌는지. 나는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내 나라의 긍정적인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우리나라가 이정도야! 폭력적인 시위없이도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지!”하며 스스로 뿌듯해했다.

20대 중반인 나는 18대 대통령을 뽑을 때는 대학을 가네, 마네 하는 18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의 청소년이었고 19대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을 생각에 참 들떠있었다. 해외에 사는 경험이 처음인 나로서는 내가 어떻게 선거를 할 수 있나 궁금해하고 있던 찰나, 재외국민 투표 신청 기간을 알게 되고 그날만 기다려 신청을 하고 재외국민으로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교통수단 열악한 섬나라에서 자차 없는 인턴에게 저 멀리 떨어진 한국 대사관으로 주 1회 있는 휴무를 이용해서 투표하러 가는 것은, 달리 뭐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젊은이의 패기 넘치는 애국심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같이 일하는 인턴들끼리 휴무를 맞춰 다 같이 투표를 하러 갔다. 다른 나라에서 내 나라 대통령을 위해 투표를 하는 것이 얼마나 설레고 두근대던지. 흡사 블라인드 데이팅 상대를 고르는 느낌만치 설레었다.

그렇게 문재인 대통령은 내가 뽑은 내 인생의 첫 대통령이었다.

그렇게 1년간의 인턴생활을 마치고 나는 한국에 돌아왔다. 내가 한국에 없던 1년 동안 무엇이 어떻게 변했을까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나에게 한국의 정치는 어떠냐고 물어보던 그 미국인 친구는 남자친구가 되어 한국에 놀러 왔다. 평소 남북한의 관계에 관심이 많은 남자친구는 파주 DMZ를 꼭 가고 싶어 했고 출국 2-3일 전에 가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그 친구는 남북 정상회담이 자신이 한국에 머무는 기간에 열리는 것을 알고 굉장히 들떠있었고 북한과 붙어있는 땅에 자신이 왔다는 것 자체도 신기해했다. 나 역시도 11년 만에 있는 정상회담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내가 뽑은 대통령의 긍정적 행보에 대해 당당히 꽤나 자주 얘기하였다.

한국에 놀러와 아침을 먹으면서 같이 평화 회담을 라이브로 보고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주었고, 친구는 남북한의 정상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이 신기한 듯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나는 18년 내 종전 협의를 보고 놀람을 감출수가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내가 인턴을 했던 그 섬나라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던 바다 옆에 있는 섬나라였고 내가 있던 1년 동안 섬나라 사람들은 북한이 언제 핵을 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계속 안고 지내야 했고 (북한 국민도 아닌)나는 아무 일 없을 거라며 친구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그런 일이 있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종전 약속이라니. 마치 누군가 어벤저스 인피니티 스톤을 사용해서 타임라인을 바꿔놓은 건가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내가 남북 정상이 종전 약속을 하였다고 친구에게 설명을 하는 순간, 울컥하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나고 자란 이 땅에서 내가 기억하는 순간에는 북한과 항상 휴전 중이었어서 어느 순간 휴전이라는 것이 디폴트가 되어 버리고 나는 ‘남한 사람이야’라고 얘기하는 것이 당연해졌는데, 그 당연함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을 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니.

친구는 “우리가 역사의 한 장면에 서있고 한국인도 아닌 미국인인 자신이 이런 순간에 한국에 있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신문을 사야한다고 한국인인 나보다 더 들떠 편의점에서 신문을 집어 들었다.

정상회담이 있던 다음 날 주말 친구와 함께 파주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고 우리는 북한을 제일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는 파주 DMZ에 가는 표를 끊으러 매표소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정상회담 이후 DMZ 관광을 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셔틀을 증차하였음에도 다 매진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파주까지 갔지만 DMZ 관광을 할 수는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한 편으론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가 종전 약속에 행복해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내 삶의 변화한 것은 너무 많다. 나는 더 이상 햄버거 세트도 사 먹을 수 없는 시급을 받으며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청원에 동의를 하며 전쟁이 나면 나는 뭘 할 수 있지? 라는 걱정은 쓸데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것은. 내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뽑은 우리의 대통령이 정말 우리를 위해 일하고 있고 한 발 한 발 발전하고 평화로워지고 있다는 것.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내가 할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다른 나라 친구들이 나에게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내 나라를 내 스스로 깎아내리는 기분이 들고 내 나라가 나를 부끄럽게 한다는 마음이 들 때가 많았는데 이제 나는 자랑스럽게 내 나라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내 나라가 나를 높여주고 있다고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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