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는 “분노란 똑똑 떨어지는 꿀보다 더 달콤해 인간들의 가슴속에서 연기처럼 커지는 법”이라고 말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신과 인간들 사이에 분노가 사라지기를 원하지만 분노야말로 유혹적이면서 강한 전파력을 가진 것이라고 애시 당초 갈파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생각하는 달 10월인데, 유난히 끔찍한 사건 사고가 많았다. 특히나 사소한 불만으로 시작되어 결국은 소중한 생명을 앗은 것으로 확대돼서 더욱 안타깝고 슬프다.

한 청년이 pc방 아르바이트생을 참혹한 죽음으로 몰고 간 발단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누가 게임을 끝내고 나간 자리를 깨끗하게 치워달라는 요구에 자신의 성에 차지 않자 단돈 1,000원을 환불해 달라는 시비로 번졌다. 하지만 제어 안 된 분노는 아직은 어리고 전도유망한 청년을 향한 반인륜적 행위를 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 분노의 끝은 죽임이었다. 그 결과는 차마 사람이 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라는 의사소견이 나올 정도로 참혹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혼한 전처를 집요하게 추격해서 끝내 돌아올 수 없는 먼 길로 보낸 남편의 비정상적 분노, 그리고 남겨진 자녀들의 아빠에 대한 분노와 그들 가해자들을 향한 국민의 분노까지, 끝없는 분노의 고리들이 이어져서 이른 추위를 맞이하는 마음만큼이나 무겁기만 하다.

pc방 사건의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20대다. 서로 소통만 잘 했다면 누구보다 공감대가 많고 서로에게 힘을 주고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성급한 불만표출과 폭언에 앞서 담배 한 개비 나눠 피고 술 한 잔 나눠 마셨으면 더 없이 좋은 인생 선후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혼부부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좋은 감정이었을 테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3명이나 낳았다. 한 세상 누구보다 아끼고 보듬어야 할 관계다. 하지만 폭력을 휘두르고 결국은 자신의 핏줄인 아이들 엄마를 무참하게 살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자식들은 공포감에 아비의 사형을 청원하며 법과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다. 비극적인 천륜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복잡다단한 세상이다. 덕분에 인간들은 겪음이 많고 부침이 넘쳐나고 해결하고 결정해야 할 일 투성이 속에 살고 있다. 자연스럽게 갈등도 많고 다툼도 생긴다. 그 많은 것들 속에서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니 어느 것 하나 여유를 가질 틈이나 있겠는가. 모든 생명체는 물론 기계조차도 수용이나 감당의 범위를 넘어서면 과부하 상태가 오고, 그러다보면 넘치게 마련이다. 결국 무엇인가 돌파구도 필요하고 어딘가에 해소도 해야 한다. 자신에게든, 아니면 타인이나 그 무엇에게든.

사회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두고 진지하게 연구하고 토론한다. 그리고 입이 닳도록 말한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소통의 소중함을 역설해야하고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솔직히 세상이 이처럼 경직되고 무자비하게 된 원인을 처음부터 이야기하자면 너무 막연하다. 무엇부터 잘못 됐다고 한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 또한 비극이다. 일련의 일들을 각박한 현실 탓이고 잘못된 교육 탓이라고 단순하게 단정 지을 수 없고 한 쾌에 정리하기에는 너무 뒤죽박죽이고 멀리 와버렸다.

첨단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모바일을 통해 사람의 감정까지 전달하고 짐작한다. 편리하고 빠르고 오차도 거의 없다. 하지만 직접 대면하지 않는 무리수에 오히려 소통은 단절되고 곡해되기도 하니 잃은 것이 먼저인지 얻은 것이 먼저인지 모르겠다.

분노는 반드시 응징이 필요한 뇌관일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분노유발 요인과 응징의 후유증이 섞여 세상은 요란하기만 하다. 하지만 분노는 끓어오르는 대로 상대에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시간 속에 숙성 시키고 가라앉혀야 하는 자기 자신과의 내밀한 격전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세상은 분노할 일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해소할 돌파구를 찾아 헤맨다. 팽팽하게 대치하는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하며 튀기는 파편들이 낙엽보다 더 수북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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