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유난히도 건강을 챙기는 요즘 사람들. 그 중 섭생의 중요함이 새삼 화두가 되는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쌀과 보리로 밥을 짓고 구수한 된장국과 손수 담근 김치로 하루 세 끼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조금은 수준 낮은 식생활이라는 인식까지 생길 지경이다.  

날이면 날마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그중 식품정보가 우리 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각 매체마다, 연구가마다 조금씩 다른 정의와 영향 피력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는 오히려 판단이 흐려질 때가 더 많다. 쉽게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과일부터 발에 밟힐 정도로 흔하거나 한낱 동물의 먹이로만 인식됐던 잡초 같은 것들이 우리 몸에 어마어마하게 좋은 식품이라는 정보를 들으면 솔직히 어리둥절할 때도 많다.

어느 식품연구가는 산이나 들에 있는 풀들은 거의 대부분 인체에 유익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나도 여기저기서 직, 간접으로나마 정보를 접한다. 그러다 보니 그 재료들을 구해다가 효소를 담그기도 하고 말려서 차로 마시기도 한다. 또한 가끔 지인에게 권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지인이 “그런 만병통치약이 어딨냐?”며 시큰둥하게 반응하면 벌쯤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그나마 이렇게 직접 식품으로 조리하고 가공해서 먹는 사람들은 다행이다. 내 지인 중엔 캡슐이나 알약을 맹신하고 그것으로 영양을 보충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찬장엔 영양제 통이 양념통 보다 더 많이 들어차 있다. 흔한 비타민C부터 D, 칼슘, 오메가3까지. 홈쇼핑채널에서 광고하는 영양제란 영양제는 다 구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의 집을 방문하면 차 한 잔보다 알약 서너 알을 먼저 건넨다. 그리고는 구구절절 그 약들의 효능을 설명한다. 난 깔깔 웃으면서 “그러다가 천 년 만 년 살아서 불사신이 되겠다”고 반은 놀리고, 반은 당위성을 실어주곤 한다. 대부분 음식물이나 자연에서 쉽게 얻어낼 수 있는 것들조차 알약으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그것들이 건강을 지켜준다고 믿고 마음의 위안을 삼는 듯하다.

나도 한때 가족들 식사 챙기기가 버거우면 ‘알약 하나로 해결하는 시대는 오지 않나’ 하는 투정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부족한 영양소를 간편한 알약으로 대신하다 보니 그쪽으로 완전히 의지하는 자신을 보게 됐다. 물론 바쁜 도시생활에서 햇빛이나 바람 한번 쐬기가 여의치 않은 데 이런 영양제라도 먹어서 내 몸을 챙기고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는 게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품질이 좋다 해도 천연재료에서 얻는 영양소에 비교할 바는 못 될 것이다. 삶에서 음식이 주는 기쁨과 행복은 무엇과도 비할 데 없이 크다. 우리가 직접 미각으로 체감하는 만족감은 물론 조리하는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도 무시할 수 없다.

예전 우리 부모님들은 때에 맞춰 1년 치 장을 담그고 김장을 하고 소금을 사고 젓갈을 마련했다. 모두 다 원재료들을 구입해서 손수 정제하고 단두리를 했다. 그렇게 청결한 환경과 정성을 다한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 저장하고 보관했다. 하지만 요즘은 완제품들이 쏟아져 나와 포장 뜯어 접시에 그대로 옮기거나 데우기만 하니, 오히려 대량 제조나 무분별한 선택에서 오는 부작용에 직격탄을 맞아 종종 당혹스럽기도 하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 갈수록 인스턴트나 즉석요리가 그 힘을 발휘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편리함과 다양함의 홍수 속에서 잃는 것이 무엇인가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저 어느 영양학박사가 정한, 적당한 함량을 품고 기계가 일정하게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천편일률적인 음식을 내 몸의 상태에 상관없이 무조건 먹어야 할까. 저 눈부신 햇빛과 청량한 바람과 싱싱한 토양에서 자란 자연식품 대신 간편한 알약 한 주먹 씩 털어 넣고 늘어난 수명의 끝을 무작정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지 때때로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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