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밤새 배터리는 100% 만땅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종일 부른 배를 안고 드러누워 있을 틈이 없다. 눈 뜨자마자 열어서 밤사이 도착한 문자 몇 개 읽고 뉴스 헤드라인 몇 개 읽으니 금세 반 토막으로 소진된다. 간혹 동영상이라도 보면 반나절 넘기기도 어렵다. 액정화면이 아예 꺼져 버릴까봐 불안하다. 통화 중에 경고 문구가 날아온다.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으니 충전하라고. 실시간 바로바로 표시되는 잔여 량. 낭비하지 않고 적당히 배분해서 알뜰하게 쓰지 않으면 정작 다급하고 중요한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보조 배터리 한 개는 필수다. 현대인들이 한 몸처럼 사용하는 핸드폰에 관한 이야기다.

화학제품이 발달되면서 1회용 용기는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 깊숙하게 파고 들었다. 가벼움이나 편리함에 있어서 그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산업화가 되면서 디자인도 중요시 되는 만큼, 색깔도 다양하고 모양도 멋진 플라스틱 그릇이나 종이 용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굳이 절실한 쓰임이 없어도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가격도 저렴해서 대량 구매하니 집엔 둘 곳이 부족할 만큼 넘치고 또 넘친다.

집 또한 먹고 자는 단순한 생활공간이던 것이 요즘엔 실질적인 용도에 앞서 인테리어에 치중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불필요하지만 보기에 좋은 물건이라면 마구잡이로 구입하게 된다. 결국 이런 것들을 쟁여 둘 수납공간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아파트 분양사가 많은 수납공간을 메리트로 내 거는 광고를 하는 이유다.

집 안엔 빼곡하게 물건들이 채워져 있고 어찌 보면 그 물건들이 주인이고 사람은 그저 왔다 갔다 하는 부속물처럼 여겨진다. 분명 주객전도다. 폰에 저장된 전화번호 개수가 그 사람의 사회적 입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저장 된 번호를 자주 덜어 내지만 모바일 세상이다 보니 일면식도 없는 사람 연락처가 무작위로 입력되기 쉽다.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SNS 게시물에 표시된 반응 개수를 보며 새삼 존재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특히 요즘엔 유투브 영상을 통해 광고하고 홍보하는 것이 대세다. 많은 유투버들이 영상을 통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며 구독자를 모집한다. 독자들이 많은 유투버는 중소기업 이상의 경제적 수입도 창출하면서 시대를 선도하고 단연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독자 수에 따라서 수입이나 인지도가 매일 오르막 내리막을 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사자성어다. 분명 선의적인 내용을 기준을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선과 악 구분 없이 무엇이든 일단 쌓고 쟁여놓아야만 만족한다. 마실 물도 몇 십 병을 사다 나르고 라면도 대 여섯 개 묶음 판매는 당연하다. 외국계 대형 마트는 대용량 아니면 아예 판매조차도 하지 않는다. 대개 한 박스나 한 보퉁이 가득 담아 자동차 트렁크가 휘청하도록 채운다.

손에서 뗄 시간이 없는 핸드폰 배터리를 자주 확인한다. 100% 가득 차야 안심이다. 만땅 증후군이라고 명명할 만하다. 특히 외출하기 위해 길을 나설 때는 필수다. 배터리 부족으로 통화가 끊기거나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를 대는 건 태만이고 매너 없는 사람일 뿐이다.

냉장고의 냉동실엔 몇 년씩 해묵은 식품들이 형체 구분도 어려운 상태로 암울하게 방치 돼 있다. 꺼내지는 않고 자꾸 넣기만 하니 치명적인 블랙홀이다.

미니멀 라이프가 화제다. 생활 속에 있는 물건이나 과부하 된 인간관계를 비우고 덜어내는 일이다. 오죽하면 버리고 줄이자는 것이 트렌드가 되고 시대의 화두가 될까. 사람들은 부족한 시절에 대한 반란이라도 하듯이 욕심껏 채우고 쟁인다. 아니 마음의 여유를 잃고 사는 것에 대한 보상을 물건으로 채우는 듯하다. 잠시도 부족함을 견디지 못한다. 결국은 그 채워진 것들이 또 다른 허기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핸드폰의 배터리를 가득 채우고 생활용품을 사들이고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 채운다, 비워야 완전히 채워진다는 것은 어느 노스님의 독백에 불과할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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