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일보 이주옥(수필가)] 현대인들에게 인터넷 활용은 필수다. 종이로 된 책이나 신문은 마치 유물처럼 사람들의 손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 옛날 아침에 눈 뜨면 들리던 아버지의 기침 소리와 사그락 거리며 신문을 넘기던 소리가 슬며시 그립기도 하다. 이제 배달된 신문은 한 페이지도 펴지지 못한 채 재활용박스 속으로 들어가는 게 다반사다. 나 또한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 스크롤을 밀어 눈에 띄는 메인 기사를 읽는다. 읽을거리도 볼거리도 많은 세상. 대다수 사람들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글을 읽고 그림을 본다. 컴퓨터만 열면 우리가 원하는 수 없이 많은 소식을 읽을 수 있고 검색어 몇 자면 아무리 오래된 고전도 읽을 수가 있으니 분명 좋은 세상이긴 하다. 그런 시류(時流)탓일까. 대형 서점은 아예 e-Book 서점까지 만들어 책을 사지 않아도 저렴한 가격으로 모바일을 이용해 읽을 수 있는 현실이 됐다. 종이책을 사러 서점을 들르는 일은 특별한 취향으로 분류 될 판이다. 한권의 책이라도 더 읽기 위해 차비 아껴 헌책방을 기웃거리던 시절은 이제 먼 얘기가 됐다.

현대사회의 대부분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학업을 한다. 그런 환경에 맞춰 성행하는 상품광고. 일에 치인 사람들은 직접 발품 팔지 않고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세상이니 더없이 편리한 것도 사실이지만 정보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과잉인 것이 문제다. 그것들은 어찌나 혁신적이고 기발한 지 21세기 가장 치열한 전쟁터는 광고시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사람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건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쓰임새와 모양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소비자에게 상품을 어필하는 방법 중 가장 단시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마 모바일을 통한 광고일 것이다. 그중 최대의 효과를 보는 것이 배너광고일 것이다. 배너는 작은 사이즈라 어느 곳이든 틈이 있거나 공간만 있으면 파고들 수 있다. 복병처럼 곳곳에 숨어 한판 도전을 요청한다. 배너들과의 전쟁이다.

글자 사이사이마다 크고 작은 배너 창들이 어지럽게 매달려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읽어야 할 글 내용보다 광고가 더 중심이 된 듯해 보일 정도다. 걷어내고 밀어내도 끈질기게 튀어나와 글자를 가리고 방해를 하니 원문은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할 지경이다. 한마디로 주객전도다. 글 한 줄 읽기 위해서는 우선 배너광고와의 전쟁부터 치러내고 그 싸움에서 이겨내야 원문 읽기가 허용된다고 느낄 정도다. 

그것들은 끈질기고 치밀하고 지능적이다. 수동적으로 지울 수 있는 X자는 교묘하게 귀퉁이에 숨어있다. 설사 겨우 찾았다 해도 단순하게 마우스로 클릭만 해서는 쉽게 없어지지도 않는다. 간신히 한 개를 지워 보내고 이젠 됐다 싶어 글을 읽으려고 하면 어느새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 자리를 비집고 다른 배너창이 치고 들어온다. 마치 번호표 받고 대기하다가 자리가 비면 잽싸게 탁자에 앉는 식당손님 같다. 우리 삶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 자리에서 일어날까 부터 시작해서 매시간 매 순간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런 와중에 매일 들여다보는 컴퓨터 안에서 이런저런 다양하고 새로운 상품을 보여주고 그에 따른 장점까지 광고를 해 주니 더없이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봐주고 선택하라고 갖은 몸짓으로 얼쩡거리니 솔직히 귀찮은 게 사실이다. 일일이 다 펼쳐보기에는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다. 바쁜 일상에 다분히 비생산적이고 오히려 방해물처럼 여겨질 뿐이다.   가뜩이나 감각적인 것에 길들여져 진중하게 글 한 줄 읽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걱정이 많은 현실이다. 하지만 그나마 모바일을 이용해 그날그날 필요한 뉴스라도 읽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대추나무에 대추 열린 듯 대롱대롱 매달린 수많은 배너광고는 그나마 읽기 의욕을 떨어뜨린다. 무엇이든 필요에 의해 생겨나고 우리는 또 그것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정작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목적 이외의 부수적인 것 때문에 맥없이 본질을 흐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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