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일보 이주옥(수필가)] 바야흐로 장마철이다. 매스컴에선 대한민국이 전국적으로 동시에 장마가 시작되는 게 14년만이라고 운운했다. 하지만 연일 남쪽지방만 집중적으로 비가 올 뿐 서울을 비롯한 중부는 맑은 날이 계속이다. 장마철엔 의당 오랜 날 동안 비가 온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우기(雨期)는 정확한 편이었다. 물론 생활이 다소 불편하고 물리적 큰 피해를 입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대처했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했다. 계절과 날씨에 맞춰 한 해 농사를 계획하고 일상의 플랜을 세우면서 무리 없이 한 해를 보냈다. 학창시절엔 장마 때면 휴교 조치도 내려져 철없는 아이들에게 환호받기도 했다. 또한 내 경우엔 주룩주룩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촉촉한 감성을 피워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 탓인가. 장마 기간이라고 하는데도 비가 오지 않는 일이 태반이다. 이 또한 문명의 발달의 일환으로 지구는 변화하고 날씨는 그에 가장 많이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쯤에 기상청 사람들은 유독 곤욕을 치른다. 예전 너무 많은 비가 올 때도 애꿎은 원망을 듣더니 이젠 내리지 않는 비 때문에 다시 원망을 듣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국민들을 우롱하고 헷갈리게 하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있다.  

마른장마. 언뜻 들으면 꽤 시적인 신조어다. 하지만 어법상 어울리지 않는 단어 조합인 것은 분명하다. 장마와 마름. 북태평양 고기압의 장마전선은 작동하는데 정작 비는 내리지 않는 게 무슨 조화일까. 또 내린다 해도 어느 곳은 홍수가 날 만큼 쏟아붓거나 아닌 곳은 논바닥이 갈라지고 개울이 마른다. 농촌은 농촌대로 잃은 것이 많고 도시의 기온은 섭씨40도를 넘어서며 실생활에 불편을 준다. 극단의 현상이다. 때를 알고 그 때에 맞춰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은 사람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주고 거기에 대처하는 지혜를 알게 하는데 말이다.

누구보다 우리 조상은 자연 앞에 겸손했다. 그에 맞는 방법으로 삶을 꾸려왔다.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 신에게 의지했고 신은 또 기적처럼 단비로 보답을 해줬다. 사람들은 한 방울의 빗물도 허투루 취급하지 않았다. 농사는 사람들의 힘만이 아닌, 자연과 함께 짓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인위적인 것들이 자연에게 도전하지만 성내는 자연의 재앙 앞에서 인간의 힘은 얼마나 미약하던가 말이다. 과학은 날씨는 물론 몇 십 년 후에 일어날 일까지 미리 예측하고 알려준다. 근데 장마 기간에도 비는 약 올리듯 내리지를 않고 당혹스럽게 만드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한 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삶은 불안하기만 하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참으려고 하지 않는다. 기다리지 않는다. 온다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분노하고 기상청을 향해 화를 낸다. 대지가 말라가듯 사람들의 마음도 나날이 바삭하게 말라가는 모양이다.  

모든 것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세상, 물론 비도 인위적으로 화학약품을 배합해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과 기술이 만드는 비로 펄펄 끓는 대지를 식히고 식물이 자라는 것이 왠지 못마땅하다. 제 때, 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고 불안하다. 세상도 사람도 달라지고 변해가는 것이 두렵다.  

한반도라면 4개의 뚜렷한 계절이 특징이고 축복이었다. 따뜻하고 꽃이 만발하는 봄, 곡식과 과일을 익게 하는 뜨거운 태양의 여름, 고운 단풍에 황홀하고 낙엽의 겸허를 배우는 가을, 찬바람과 흰 눈을 맞으며 따뜻한 봄을 기다리던 겨울이 주는 계절감. 하지만 언젠가부터 슬며시 봄가을이 사라져 가고 여름과 겨울 두 계절만 남은 것 같다. 장마 기간에도 땅은 말라 있는 아이러니 시대다. 모든 것이 뜨겁거나 춥거나 양극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도 계절도 제때에 순리대로 오고 머물고 흘러갔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