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9.

지난 7월 1일 부임해 막 100일을 넘긴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66)가 한국언론 데뷰를 무난하게 마쳤다.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있을만큼의 대북(對北)정책 초강경론자라는 이미지를 다소 완화시키면서,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는 '핵무장론'에 명백한 반대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전술핵이든 아니든 핵무기로 인한 위협을 증가시길 게 아니라, 긴장을 낮추고 핵무기를 제거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미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대한 한국의 의지를 재천명한 사실을 언급한 뒤 "핵 확장억제는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보호조치를 뜻한다"고 밝혀 이 사안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최근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들이 잇달아 "전술핵 재배치"나 "NPT 탈퇴 후 독자 핵무장" 등을 주장한 데 대해 미국이 분명하게 "NO"라고 답한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미국의 특명 전권대사인 그의 발언은 곧 미국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는 "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이른바 '공포의 균형론'에  대해서도 명백히 반대했다. 그는 "핵무기 확산이나 개발을 막는 핵확산금지조약에 대해 미국은 굳은 의지를 갖고 있다"며 "북한이 핵을 갖고 있다는 가설적(假說的)인 상황이 아니라, 북한의 위협을 어떻게 끝낼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비핵화의 중요성을 원론적으로 재강조한 셈이다.

그동안 대북정책에 관해서는 '매파 중의 매파'라 불렸으며, 2009-2010년 유엔(UN) 대북 제재 이행담당관 시절 '대북 제재 결의안(1,874호)'을 주도했던  골드버그였음을 고려한다면 그의 이날 발언은 수위(水位)를 한껏 낮추고 온건해진 것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날 토론회에서 동성애자라는 그의 사적(私的) 상황에 대해서는 패널들의 문의가 일절 없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주한 미국 대사라는 요직을 1년 반씩이나 비워두었던 것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결례가 아닌가?"와 "앞으로 대북 강경론이 남북관계에 걸림돌이 될 경우 이를 수정할 용의가 있느냐?"라는 필자의 두 가지 질문에 답하지 않고 나중에 서면답변하기로 한 점이다.

그는 네번 째 대사직을 맡을 만큼 노련한 정통 외교관이다.
그가 재임기간 중 한국 사정과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더 깊이 이해해, 북한에 대해 더는 불량정권(Rogue Regime) 같은 표현을 삼가면서, 대북관계 개선에 족적을 남기기를 기대한다.

김기만. 언론인/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청와대 춘추관장/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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