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일보 이다겸 기자] 문예출판사가 한국문학을 동시대 감각으로 분석하며 비평의 장을 다각적으로 확장해온 나병철 교수의 문학비평서 ‘정동정치와 언택트 문학’을 출간했다. 2021년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된 ‘문학의 시각성과 보이지 않는 비밀’에 이어 3년 만에 선보이는 신간이다.

나 교수가 이번에 주목한 것은 한국문학과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감성적 불평등성’이다. 감성적 불평등성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한 타자들을 추방하고 인간 이하의 존재로 강등시키는 차별을 뜻한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버닝’ 등 우리 시대의 화제작들은 모두 극단의 불평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기생충’에서 ‘냄새’, ‘오징어 게임’에서 ‘연대의 해체’, ‘버닝’에서 ‘에로스의 상실’은 모두 존재론적 정동과 연관이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러한 오늘날 감성적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즉 불평등한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인격적 존재를 회생시키는 정동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동정치는 타자가 추방되고 연대가 해체된 시대에 쓰러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존재론적 반격이다. 저자는 ‘보건교사 안은영’, ‘레몬’ 등 현대문학 작품과 ‘기생충’, ‘오징어 게임’, ‘버닝’,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영상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 미학과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정동적 반란을 21세기 불평등성의 문제를 해소하는 해결책으로 재구성한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 이후 경제, 교육, 의료, 시장에서 언택트 사회의 도래에 관한 담론이 활발히 논의됐다. 그러나 저자는 비대면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온라인 경제도 원격의료도 아닌 언택트 윤리라고 말한다. 감성적 불평등성의 사회란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선을 넘을 수 없기에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세계다. ‘기생충’은 경제적 불평등이 극단화되면 감성적, 시각적 불평등성이 발생한다는 비극적 현실을 보여줬다. 저자는 감성적 불평등의 사회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정동을 그리워하지만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처럼 수동적 정동의 젤리가 만연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언택트 문학은 보이지 않는 ‘무증상의 증상’을 드러내며 거리를 둔 채 정동적 재결합을 시도한다. 2000년대 이후 많이 등장한 시간 환상을 다룬 작품들은 언택트 미학과 관련이 있다. 시간 환상은 수동적 정동의 맥락에서 벗어난 사람들끼리 깊은 심연에 감춰두었던 정동(에로스)을 확인하는 장치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이재한과 박해영의 교신은 시간을 뛰어넘어 해방된 윤리가 능동적 정동으로 물결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소설 ‘레몬’에서 주인공 다언은 죽은 언니와 멀어지다가 레몬 향기를 통해 불현듯 다시 가까워지며 선적인 시간을 뛰어넘는다.

저자는 책에서 ‘한겨레’ 신문(2021년 1월 18일자)에 실린 사진(책 표지, 본문 73쪽 수록) 한 장을 소개한다. 무섭게 쏟아지는 한겨울 눈발 속에서 한 시민이 추위에 떠는 노숙자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점퍼와 장갑, 지갑 속의 5만원을 건네주는 장면이다. 저자는 감성적 불평등성의 사회에서 우리가 타자와 포옹하지 못하는 것은 수동적 정동의 젤리에 포위돼 있기 때문이라고 다시 한번 지적하면서 우리에게는 사진 속 시민처럼 떨어진 채 다가서며 다시 손잡는 소낙눈 같은 ‘기습적인’ 정동정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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